1. 이번에는 화타 김영길 지음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제1권과 제3권의 일부를 요약해서 소개하겠습니다. 이 책에는 오래 걸어서 질병을 치료한 많은 사람들의 치유 사례가 나옵니다. 제1권은 왜 걸으면 병으로부터 벗어나 살아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어 좋습니다. 저자 자신이 직접 많이 걷고 있는 분입니다. 제3권은 저자가 실제 섬을 포함한 남한 해안선 7,000킬로미터를 걸으며 느낀 소감들을 적은 글로서, 마지막인 5.에 요약했습니다. 또 이 책들은 99과에 소개된 '병에 걸려도 잘 사는 법'의 저자가 오래 전에 쓴 책이기도 합니다.
삼천포에서 몇 개의 사업체를 갖고 있는 50대 초반의 박 사장은 10여 년 전부터 당뇨가 있어 식이요법을 철저하게 지켜왔습니다. 그런데 당의 수치가 높아져 병원에서 종합 검진을 받았는데 진단 결과는 간경변 합병증이었습니다. 서둘러 입원하여 반 년 남짓 병원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막내 딸로부터 이야기를 들어서 강원도 산 속인 방태산에 있는 저자의 한약방을 찾아왔습니다. 병을 고치겠다는 생각보다 갑갑한 병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환자가 침대에 누워 있을 경우, 젊은 사람은 하루에 1.5% 정도의 근육 힘이 떨어지고, 노약자는 5% 가량 떨어집니다. 노약자의 경우는 열흘만 침대에 누워 있어도 몸의 기운이 절반으로 떨어지게 되는 셈입니다. 스웨덴의 유명한 뱅마르크 교수는 "침대는 병을 치료할 수 없다. 환자들을 병상에 가둬둔 것이 서양 의학의 가장 큰 실수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부인의 치료 효과를 보고 저자를 신뢰하게 된 박 사장 부부는 방태산 자락에 있는 화전민인 광욱이라는 청년의 집에 거처를 정했습니다. 그리고 거의 걷지 않던 그가 매일 6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개인산 약수터까지 걸어서 갔다가 오는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왕복 12킬로미터나 되는 험한 비탈길의 산길을 걷는다는 것은 성한 사람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평생을 '자동차 감옥'에서 보내 죽을 기력도 없는 50대의 박 사장이 걷기란 엄청 힘든 일이었습니다. 길을 걷다가 혼절하기가 수십 차례였습니다. 그때마다 광욱이 부추겨 주었습니다.
박 사장은 일 주일이 되는 날 당뇨 테스트를 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정제된 식사, 당뇨약으로도 잡히지 않던 당뇨 수치가 일 주일 만에 정상 수치가 되었던 것입니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는 신념이 정말 현실로 나타났으니 놀란 것도 당연합니다. 그는 그 동안 운동은 하지 않은 채 누워만 있으면서 치료를 했으므로 식이요법이나 약물요법 등이 모두 독으로 작용했습니다.
완전히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이나 약은 모두 독으로 작용해서 병을 키웁니다. 그런데 이제 박사장은 약 대신 심한 운동을 했기 때문에 열과 기운이 나고 음식물들이 완전 소화가 됐기 때문에 기운 순환이 되어 당뇨병이 간단하게 치료된 것입니다. 방태산의 깨끗한 공기, 깨끗한 물도 한몫 거들고 박 사장의 죽어도 좋다는 각오와 마음도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2. 50세에 '할머니'가 된 귀부인 6명이 저자의 한약방이 있는 강원도 방태산 오지를 찾아왔습니다. 이들은 모두 같은 여대 출신으로 한때 이름을 날리던 젊음이 있었다고 한탄을 하면서 여행 삼아 화타 한약방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같이 나이에 걸맞지 않게 골다공증, 요통, 수비통(손과 팔 부위에 통증이 있는 병), 갱년기 장애로 할머니가 되어 있었습니다.
저자는 이들에게 우선 78세의 개똥이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 노인은 활처럼 휜 척추를 가지고 있어 허리 통증이 심했습니다. 그러나 들에 나가서 뼈빠지게 일을 하면 어느새 통증이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이 노인을 치료한 것은 힘든 일을 할수록 뼛속에 에너지가 축적되어 뼈가 튼튼해졌기 때문입니다.
결국 모든 병에서 해방되어 젊음을 되찾기 위해 부인들은 모두 타고온 고급 승용차를 돌려 보냈습니다. 당장 십리 정도의 산길을 걷게 했습니다. 30분 남짓 지나자 쉬어 가자는 이야기가 절로 나왔습니다. 며칠 뒤엔 방태산과 개인산에 오르게 했습니다. 이런 훈련을 100일간 계속하자 이들은 설악산 오색약수에서 대청봉을 넘어 설악동으로 내려가는 험한 산길도 쉽게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골다공증, 요통, 수비통, 갱년기 장애도 말끔히 사라졌으며 배의 군살도 빠지고 얼굴 또한 30대 처럼 팽팽하게 되살아났습니다.
갱년기 증상은 기운 순환 장애가 한계점에 도달하여 나타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50세 전후가 되면 선천적으로 타고난 원기가 고갈됩니다. 머리털은 빠지고 눈은 침침해지고 귀도 잘 들리지 않습니다. 몸의 아래로 내려가야할 순환열이 상체에 정체되어 있으므로 얼굴이 달아오르고 땀이 납니다. 하체에 열이 전달되지 않으므로 신장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여 요통과 부종과 피로가 찾아옵니다.
상체와 하체의 연결고리인 장에도 문제가 생기게 되어 온갖 위장병이나 심장병이 생기고,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게 되어 결국 장기간 몸속에 불순물이 누적됩니다. 이런 증상들은 기운 순환 운동의 기본인 하루 2시간 이상 걷거나 산행을 해야 합니다. 2시간 이상 걷기 운동을 한 뒤에 헬스를 한다든지, 수영을 해야 좋습니다. 그리고 아침과 점심은 적절히 먹지만 저녁은 아주 적게 먹고 오후 6시 이후에는 물 이외는 일체의 음식을 먹지 않아야 합니다.
우울증도 몸의 기운 순환 장애가 심해서 온 질병입니다. 우울증은 한마디로 억압된 분노입니다. 분노를 표출시키지 못하면 내부에서 곪아 점점 더 심해집니다. 우울증은 2시간 걷기 운동과 같은 심한 운동을 하여 기운 순환을 시켜주면 막힌 기가 열리면서 병이 낫습니다. 그리고 말을 많이 하지 않아 기의 소모를 줄여야 합니다. 아래로 내려가야 할 기가 입으로 발산되면 말이 많아지고 기운 순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칩니다. 2시간 걷기가 어려운 사람은 집안일을 할 때에 심한 운동으로 생각하고 더 열심히 하면 됩니다.
배낭을 메고 걸으면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 좋습니다.
3. 서울의 모 외국어 고등학교 P군은 2학년까지 줄곧 전교 수석을 했지만 3학년이 되면서부터 학교 성적이 떨어졌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는데 이상하게 성적이 오르지 않았습니다. 이 학생은 어려서부터 비후성 비염과 기관지 천식을 앓고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그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지만, 정신적으로 신경을 많이 쓰고 과로하면 그 증상이 심해집니다. 비염과 천식은 코와 폐에 그 결과가 나타나지만 근본적으로는 몸 전체의 기운 순환 장애에 원인이 있습니다.
기운 순환 장애로 인해 코가 막히면 머리에 산소 공급이 힘들어져 두통이 생기고 피로해지면서 학업 성적이 떨어집니다. 보통 육체 에너지의 30~40퍼센트를 두뇌 에너지가 사용하는데, 에너지가 부족하니 성적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저자는 P군에게 매일 새벽마다 마스크를 쓰고 30분간 조깅하도록 했습니다. 이는 코로 숨을 쉬게 하는 연습입니다. 산행을 두 시간 정도 하면 좋겠지만 바쁜 학생이라 차선책을 강구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매우 힘들지만 차차 운동 관성이 생겨 습관이 되면 코의 기능도 좋아지고 폐의 기운도 활성화되어 몸 전체의 기운 순환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이것이 서로 상승 작용을 하게 되어 100일 후에는 체질이 건강한 몸으로 바뀝니다. P군도 간병 치료 요법에 마스크를 쓰고 달리기를 겸하니까 100일 후에는 비염과 천식이 완치되었습니다. 건강한 체력이 되니까 학교 성적도 다시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4. 1) 몸이 뚱뚱하다고 놀림받던 소녀가 적당히 먹으면서 백일 만에 날씬한 몸매로 바뀌었습니다. 아버지가 중견 언론인인 P소녀는 고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여학생입니다. 50킬로그램이 채 안 되던 체중이 고교에 진학하고 2년만에 갑자기 65킬로그램으로 늘어나 날씬하고 귀엽던 소녀가 그만 씨름 선수나 아주머니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P소녀는 대부분의 도시 학생들처럼 아침은 대개 굶은 채 등교합니다. 밤 10시가 넘게 집에 와서는 때늦은 저녁 식사를 많이 하고 잠을 잡니다. 미국 대학병원의 연구에 의하면, 아침 식사를 하면 기초대사율이 3~4퍼센트 증가하고, 굶으면 3~4퍼센트 낮아진다고 합니다. 이를 1년 동안 모아 계산해보면 아침 식사를 하지 않을 경우 7킬로그램 정도 살이 더 찝니다. P소녀가 고교에 진학해서 2년 동안 아침 식사를 하지 않고 저녁에 식사를 함으로 15킬로그램 살이 찐 것은 당연한 결과인 것입니다.
저자는 P소녀에게 아침, 점심은 적당히 먹되, 식곤증을 느끼지 않을 정도 즉 정상 식사량의 약 70퍼센트만 먹고 저녁은 아주 조금만 먹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100일간 오후 5시 이후에는 생수 외의 음식을 일체 먹지 않도록 했습니다. 100일이 지난 후 P소녀는 정상 체중인 50킬로그램을 되찾아 명랑하고 활발한 학생이 되었고, 학업성적도 눈에 띄게 향상되었습니다.
옛날에 하루 종일 걸어서 소시장에 도착한 소는 저녁을 굶겼는데, 이것은 피곤해진 소에게 여물을 먹이면 소가 죽는 수가 있어서였습니다. 천자문에 보면 조반석죽(朝飯夕粥)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아침 식사는 밥을 먹고, 저녁에는 죽 즉 죽같이 허기지게 먹으라는 뜻입니다. 요즘은 저녁식사로 과일만 먹는 과일식이 유행입니다. 과일은 위에 30분만 머물기 때문에 배불리 먹으면서도 거의 굶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기 때문에 저녁 식사 대용으로 좋은 것입니다. 저녁에 배가 고프면 뜨거운 물을 조금씩 마시면 됩니다.
2) 저녁을 백일간 굶어 고시에 합격한 여대생이 있습니다. 명문 대학의 사회학과를 2년 전에 졸업한 M양의 부친은 외교관입니다. 전공과는 다르지만 부친의 가업을 잇는다는 결심으로 외무 고시에 세 번 응시했으나 번번이 떨어졌습니다. 지난 해 세 번 실패하고는 부친과 안면이 있는 저자한테 며칠 쉬겠다고 찾아 왔습니다.
얼굴이 예쁘고 몸매도 날씬했지만 같은 또래의 처녀에 비해 마른 체구였습니다. 짐작컨대 40킬로그램을 넘지 않을 듯싶었습니다. 밥을 먹을 때면 이것 저것 맛만 보다가 먹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저자는 M양에게 공부하다가 편한 시간을 택해 오전, 오후 각기 한 시간씩 산책을 하고 저녁 식사를 굶게 했습니다. 몸의 효율을 높여 기운 순환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몸이 뚱뚱한 사람이나 마른 사람이나 인체의 효율이 나쁘다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 인체의 효율을 높이는 방법으로는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고 싶은 만큼 먹되, 몸이 휴식을 취하는 시간 즉 저녁 시사를 거르는 것입니다. 마른 사람은 살이 찌고, 살이 찐 사람은 살이 빠집니다. 이렇게 100일을 하다가 보면 처음 10일을 넘기는 것이 가장 힘이 듭니다.
M양은 100일 동안 저자의 지시 사항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실천에 옮겼습니다. 고시 시험 날이 다가오면서 공부의 양을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몸은 전보다 더 좋아지고 있었습니다. 6개월 뒤, 신문에 부녀 외교관이 탄생했다고 떠들석하는 기사를 보고 저자는 흐믓했습니다. 한때 아침을 먹지 않으면 건강하다고들 주장했지만, 사실은 저녁을 먹지 않아야 더 건강하다는 것은 오랫동안 검증되고 오늘날에도 여러 사례들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5. 1) 안면도는 본디 '태안의 곶'으로 태안반도 남쪽에 있는 육지였습니다. 조선 인조 때 전라도와 충청도에서 한강의 마포나루로 오는 세곡선의 뱃길을 줄이려고 지금 안면교가 있는 자리를 뚫어 안면도가 우리나라에서 여섯 번째 큰 섬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다가 1970년 안면대교가 생기면서 다시 육지와 이어졌습니다. 안면대교를 지나 백사장 해수욕장으로 갔습니다.
해변에 있는 모래가 얼마나 희고 고운지 해수욕장 이름을 '백사장 해수욕장'이라고 부릅니다. 삼봉 해수욕장에 당도하자 지금까지 오면서 본 백사장 중에서 신두리 해안사구 다음으로 모래가 많이 쌓여 있었습니다. 겨울인데도 날씨가 봄날처럼 따뜻했습니다. 모래사장에 누우니 잠이 스르르 왔습니다. 30분쯤 자고 일어나 둘러보니 아무도 없어 옷을 다 벗고 일광욕을 했습니다.
삼봉 해수욕장, 기지포 해수욕장, 안면 해수욕장, 두여 해수욕장, 밧개 해수욕장, 두에기 해수욕장, 방포 해수욕장을 거쳐 꽃지 해수욕장에 도착하니 저녁 6시 30분이었습니다. 아침 6시 30분에 숙소를 나섰으니 밥 먹고 잠자고 쉰 두 시간을 빼면 꼬박 열 시간을 걸은 셈입니다. 그것도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사장만 백 리를 걸은 것입니다. 꽃지 해수욕장은 몇 년 사이에 많이 변했습니다. 조용하고 소박하고 아늑하던 해변 마을에는 화려한 호텔과 고급 식당, 을긋블긋한 펜션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습니다.
내가 우리나라 해안선을 걷는 일은 극기 훈련도 아니고 기록의 도전도 아닙니다. 그저 천천히 즐겁게 둘러볼 뿐입니다. 사람들은 왜 걷느냐고 묻습니다. "즐거우라고, 기분 좋으라고 걷습니다."라고 대답할 뿐입니다. 나이키는 보통 600킬로미터를 걸을 수 있도록 밑창을 설계한다고 합니다. 운동화의 수명이 600킬로미터이니 우리나라 해안선을 다 걸으려면 적어도 열 켤레의 운동화가 필요합니다.
2) 시인 한하운의 시비가 있는 소록도의 중앙광장을 걷자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학병원에서 담도암 판정을 받았다고 찾아 온 마흔 가까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병원에서는 그를 수술이나 항암 치료가 어려워 그냥 퇴원하라고 했습니다. 생존 기간은 6개월 미만이었습니다. 저자는 그에게 시인 한하운의 삶을 이야기했습니다. 한하운은 어느 날 한센병에 걸렸습니다. 한센병은 전신 암 못지 않게 무서운 병입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한하운은 하느님을 원망하고 세상을 탄식하고 자살을 수없이 생각하다 정신이 들었습니다.
"인생에서 자살은 한 번밖에 할 수 없는 것, 자살을 아끼고 살아보자. 살다 보면 무슨 수가 나겠지." 한하운은 썩어가는 손과 발로 하루 종일, 일년 내내 국토를 걸었습니다.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며 돌을 던졌습니다. 그는 증오심으로 가슴이 막히고 눈에 핏발이 섰지만 그냥 걸었습니다. 비가 오건 눈이 오건 걸었습니다. 몇 년 후, 한센병을 극복한 그는 건강한 사람, 건강한 시인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저자는 담도암 환자에게 한하운의 시와 함께 남한의 해안선 7천 킬로미터를 걸으라고 했습니다. 암세포는 열에 약합니다. 공포, 우울, 절망감은 몸을 차갑게 합니다. 밥을 먹을 수 있고 걸을 수 있는 한 면역체계가 기적을 일으킵니다. 기적의 토대는 걷기에 있습니다. 한하운은 썩어 문드러지는 발로 절뚝거리면서, 돌팔매질을 당하면서 전 국토를 걸었기에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반년 동안 해안선 순례를 한 뒤 직장을 구한 그는 집에서 직장까지 두 시간을 걸어서 출근하고 두 시간을 걸어서 퇴근했습니다. 해안선 걷기를 한 덕에 네 시간의 출퇴근 길이 옆집 가듯 가벼웠습니다. 그는 암세포가 있거나 말거나 열심히 일하면서 걷다 보니 일도 즐겁고 걷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사망 예정일을 5년이나 넘긴 그는 여전히 즐겁게 일하고 즐겁게 걷고 있습니다. 암세포가 커졌는지 줄어들었는지는 그의 관심밖입니다.
3) 법성포를 지나 백수읍에 들어서니 백수 해안도로에는 '해당화 삽십 리 길'이라고 부를 만큼 많은 해당화를 길가에 심어 놓았습니다. 해당화를 보니 세종대왕이 떠올랐습니다. 훈민정음을 반포할 때 세종대왕은 48세로 기력이 왕성해야할 시절이건만 병이 깊어 몸이 시들 대로 시들었습니다. 각기병으로 제대로 걷지 못하고 창질로 몸이 들어눕기조차 힘들고 조갈병(지금의 당뇨병) 합병증으로 극심한 눈병을 앓았습니다.
그러면 향약집성방을 저술하는 등 약초에 조예가 깊었던 세종대왕이 당뇨에 좋은 약초를 몰랐을까요? 해당화 뿌리를 모르거나 구하지 못해서 고생한 게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해당화 뿌리를 먹어 봤자 소용없는 짓입니다. 어의가 세종에게 "하루 삼십 리를 걸으면서 출장식 호흡을 하십시오. 이것이 조갈병(당뇨)의 특효방입니다. 걸으면 각기병도, 부스럼병도, 눈병도, 조갈병도 다 없어집니다." 하고 처방을 내렸어야 합니다.
결국 세종은 환갑 잔치도 못하고 아깝게 죽었습니다. 당뇨의 비방은 '천천히 걸으면서 출장식 호흡하기' 입니다. 출장식 호흡은 내쉬는 숨을 마시는 숨보다 두 배 정도 길게 하는 호흡으로 99과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해당화 삼십 리길을 날마다 걷는다면 당뇨는 반년 안에 완치됩니다. 아무리 많은 해당화 뿌리나 산삼을 먹어도 세종의 병은 낫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성능 폭탄이 아무리 많아도 혼자 터지지 않는 법입니다. 뇌관을 때려야 터집니다. 걷기야말로 뇌관 때리기인 것입니다.
'참고문헌'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1' 저자 김영길. 도서출판 사람과 사람 1999년 15쇄 발행.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3' 저자 김영길. 도서출판 사람과 사람 2009년 발행.